Social Enterprise & PR

라면에 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본문

일상다반사/해외통신원

라면에 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보노정 2010. 1. 22. 20:46

라면을 구할 수 없다는 미쿡 북서부 거주 후배의 리플에, 같은 고학생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어제 택배로 받은 삼양라면을 부쳐보기로 했다. 

물론 후배의 집에서도 부쳐주실 수 있겠지만, 이번에 13만원이 넘는 운임(내용물 가격의 몇 배)을 들여 집에서 부쳐오신 음식들을 보니...감동의 물결이 사그러들지를 않는다. 

내친김에 이 감사의 마음을 대륙건너 고생하고 있는 후배에게도 전하고파서 포장할 뽁뽁이를 찾고 있다.  이 블로그도 그녀 덕분에 구글리더에 막혀있던 경로를 뚫고 읽히게 된 것이 아닌가?  덕분에 감사의 생활을 지인들과도 손쉽게 나눌 수 있게 된 것이고.
은혜로운 IT기술을 가진 그녀가 라면먹고 힘내서(이건...좀 이상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의 라면 보내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우선 배가 고파서 라면을 하나 먹고 나가려고 식사 준비를 했다.  집에서 보내실 때 사발면을 용기버리고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는데, 한참동안 이게 뭐지? 하고 궁금해했었다.  첨엔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걍 넣어주신건가? 하고도 생각.ㅋ (우리 집은 유통기한에 대해 그닥 괘념치 않는다.  특별히 단백질 종류 음식의 유통기한 아니고서는 그냥 무시하고도 잘 산다.) 



여기서 꼬리를 무는 상념 하나...

어제 집에서 보내 온 박스를 보고, 배달이 잘못됐을까봐 노심초사할 가족에게 메일을 당장 보냈었다.
--------------------------------------------------------------------
짐 받았다.

김치 종류라고 적으셨는데, 운임만 13만원이다...
나 김치 없어도 너무나 잘 살고있는데, 왜 이러신대...냉장고도 코딱지만한데, 그 사진부터 보여드릴 것을.  이 일을 어쩐댜.  보관도 어렵다...흑

아니...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일단은... 
다시는 이런 짐 부치지 마시라고 네가 잘 알아들으시게 설명드려다오. 
16일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는데 왜 21일 아침까지도 안오냐고 배달하는 곳에 따지러 가려고 했는데, 아주 시기적절하였다.  고마워~~
한국우체국 배송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인터넷으로 추적가능하다는 걸 쥔장 올리버 아저씨에게 말해줬더니 내심 놀라는 눈치.ㅋ  우리 IT강국이라규~ 

오늘 저녁에 이 메일 확인하면 가슴을 쓸어내리시것네, 엄마도...^^
--------------------------------------------------------------
(1시간 후)

짐 풀었다.

김치인줄 알았는데, 김에 호두에, 라면에, 김가루에, 초고추장에, 낱개포장한 떡에, 연근반찬에, 심지어 나의 풰이보릿인 김치국물에 적신 파래지까지...
눈물나는 줄 알았다.  아니, 집주인 토릴 언니만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을거다.
 
엄마가 오빠 군대보내고서 한달 후엔가 집에 쌀이 한 가마니 배달왔는데, 오빠가 경작해서 보낸 건줄 알고 쌀가마니 붙잡고 엉엉 우셨었다지...
아빠가 들어오셔서 그거 아빠가 사오신 거라고 말씀하셨을때...그때의 적막감은 안봐도 비디오다.  우리 집이 아무리 코메디 가족이라지만, 정말 엄마가 어떤 표정이셨을까? ㅎㅎㅎ 
 
엄마랑 같이 울던 네가 멋쩍었는지 '에이 참! 엄마는 알아나 보고 우시지!' 했다는 게 더 웃겼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잖아?
 
내가 딱 엄마가 첨 쌀가마 붙잡고 우시던 그 심정이더라.

타향살이 고생도 별로 안하고 있는데도, 그냥 고맙고 그립고 서글프고 그런거야...
토릴 언니가 옆에서 '너 한국 음식을 잊을까봐 엄마가 배려해서 보내셨나부다' 하더라구.  엄마들이란 다 그런거라면서...
 하긴 17살 짜리 뇌성마비 장애인 딸을 2년 전 사고로 잃었던 사람이니까 부모로서 자식 생각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아무튼, 엄마에게 다른 건 빼고라도, 너무너무 감사하다고...이 음식으로 3년은 버틸 것 같다고 전해드려다오.  올해 말에 한국 들어갈 때 남은 음식 싸가지고 가야 할 지도 모른다고.ㅋ

그래도 이 집의 초미니 냉장고에 어떻게나 차곡차곡 잘 챙겨넣었는지...테트리스 하나도 못해도 냉장고 정리는 잘한다규~ 하고 외치고 싶더라.
나의 식량창고가 든든하다.  토릴 언니 말처럼, 이제 먹는데 돈 쓸 일은 없겠다 싶다. 우하하하하
넌 이 기분이 어떤건지 모를거다...흑
 
고맙고 또 고맙다.  
1시에 수업 있어서 걸어가려면 1시간 전에 나가봐야 하는데 12시 5분이다.  그래도 아침부터 이불빨래 다 하고, 널고, 밥도 야채 볶아서 잘 먹고, 짐도 무사히 잘 받고...
너무나 성공적인 하루다.  날씨가 옥스포드 온 지 한 달 1주일만에 3번째로 쨍하니 좋다. 
 
감사찬양이 절로 나오는 즐거운 하루를 열어주어, 너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너무나 고맙다!!!

급해도 고맙다는 말은 다 해야 하는 누나가 
----------------------------------------------------------------------------------

여기에 또 꼬리를 무는 상념...

집에다가는 절대 그런 거 보내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하나 하나가 눈물없이는 못먹겠는 귀한 감동을 주는지라...
비록 엄청난 운임을 지불하고서 받는 음식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감사가 느껴지는데, 하물며 하나남의 은혜를 값없이 받는 우리 사람들의 기쁨은 오죽할 것인가...

우리가 모르고 사는 게 너무나 많다.  공기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혹은 늘 존재해왔기 때문에 놓치고 사는 삶의 기쁨들이 얼마나 많은지...

손수 그 많은 음식들을 차곡차곡 박스에 정리하시며 못난 딸을 그리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렌지에 데워서 동그랗게 말아서 김가루를 뭍혀 먹고있는 찰떡이 목에 얹히려고 한다.


12시에 나가봐야 하는데, 20분 전 12시다.  옷입고 총알같이 튀어나가리.  엄마표 찰떡의 힘으로!!! 

'일상다반사 > 해외통신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일치운동과 3명의 피터에 대한 단상  (6) 2010.01.25
외국인들에게 신기한 한국물건  (0) 2010.01.23
옥스포드서 은행계좌 만들기  (2) 2010.01.22
Oxford 물가지수  (10) 2010.01.21
감사 목록  (14) 201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