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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경험, 깨달음 - 내 기분이 이럴진대... 본문

일상다반사/해외통신원

사소한 경험, 깨달음 - 내 기분이 이럴진대...

보노정 2010. 2. 11. 09:40
두 개의 작은 에피소드. 

#1. 중국 고미술 박사과정인 홍콩녀 사라와 수요마켓에 갔다.  우박이 오는가 싶더니 금새 화창해진 날씨에 기분이 좋아서 '해피!'를 연발하며 장터로 들어선 우리는 벼룩시장같은 자그마한 장터에서 이것 저것 구경하고 과일도 사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그때까진 행복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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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박이 또 쏟아지는 바람에 급히 근처의 펍으로 들어갔다.  늘 느끼는 거지만 눈이나 비가 반갑지 않게 올 때 밖에서 우왕좌왕하면 참 기분 별로지만, 차 안이나 아늑한 실내에 들어서면 순간적으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없다.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라니...

아무튼 우박을 피해 들어 온, 혹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러 마실나온 영감님, 할머니들로 이미 펍은 빈 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창가에 앉아 우리 둘을 빤하게 바라보던 할머니 눈길을 느낄때만해도 그런가부다 했다.
인기있는 곳이라더니 커피와 핫쵸코 레귤러가 99펜스라는 아주 착한 가격이길래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하러 바 bar로 나갔는데, 많이 바빴는지 서버가 당최 오지를 않는거다.
내 앞에서 기다리던 할머니들 두 분이 카페라떼를 주문했었나본데, 깐깐하게 생긴 여성 서버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할머니들한테 오더니, 자리에 가서 앉아계시면 갖다주겠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들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10분동안이나 정성스레 만들어서 서빙하더라.

이미 5분 가량 기다리면서 중동계 아저씨 서버와 눈길 몇 번 마주치고 있던 나는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내 순서를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주문이나 먼저 받지, 하는 한국사람다운 생각에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서버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으나 나 지금 뭐 만들고 있잖아 하는 반응들만 돌아올 뿐.  테이블에서 내 쪽을 쳐다보는 사라에게 손짓으로 '15분씩이나...'하며 웃을때만해도 뭐 그러려니...
드디어 '쟤 아직도 있네?' 하는 표정으로 다가온 중동계 아저씨에게 핫쵸코, 모카커피 둘 다 레귤러로!  라고 주문했고 아저씨는 둘 다 레귤러? 라고 되묻기까지 하고는 작업시작했다.

2분 남짓 걸려 빨리 만들어 주길래, 웬일이래 하고 받아들었는데 라지 사이즈! 99펜스짜리 두 개 계산해서 2파운드짜리를 쥐고있던 나는 황당할수 밖에.  분명 메뉴판에 레귤러/라지 따로 명기돼있는데 이 아저씨 무슨 일이삼?  더 황당한 아저씨의 멘트 '커피나 음료는 레귤러 사이즈가 없어.  다 라지야. 메뉴판이 잘못됐어.  라지값 내야해.' 하는 거다. 

주문할 땐 자기 입으로 레귤러라 하더니?  처음엔 일반 사이즈 커피잔이 떨어져서 라지로 만들었다는 줄 알고, 한국식으로 '레귤러 값으로 라지 주려나보다' 하고만 생각하고 웃으려 했는데, 이 아저씨 표정이 사뭇 심각하길래 곰곰히 그의 말을 복기한 끝에, '이 아저씨가 내가 동양인이라 어리버리 말도 못알아듣겠거니 하고 당연히 메뉴판에 있는 레귤러/라지도 잘못된 거라고 하면서 일부러 라지 만들어놓고 그 값을 내라고 우기고 있군,' 하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상대가 얄팍하게 수를 쓴다고 생각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나의 성질.
조목조목 따지며 메뉴판 가져오랴? 매니저 부르랴? 했더니 뭔가 꾹 참는듯한 표정으로 2파운드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준다.  
받아들고 테이블로 돌아가서 20분간 서있는 동안 아팠던 허리를 두들기며 사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웬일이니, 그리고 모카가 아니라 블랙커피네?' 하는 것이었다. 
여기 와서 종종 느끼는 거지만 주문하나 제대로 못받는 서버들이 즐비하더라.  빠릿한 한국서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라와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만다린이나 켄토니즈(홍콩은 이걸 사용), 혹은 한국어로 이 재섭는 서버들을 비난하고 싶었다.  그러나 영어로밖에는 소통이...  옆에 앉아 신문보던 할아버지와 아까부터 우리쪽 쳐다보던 할머니 때문에 뭐라 큰 소리로 말은 못했지만, 나의 흥분된 표정과 분위기로 봐서 상황은 짐작했을거다.

사라도 런던에 처음 와서 인적드문 길가에서 어떤 술취한 듯한 남자가 자기에게 침을 뱉었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때, 못박았던 무리를들 바라보며 '저들을 용서해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사라가 먼저 무의식중에 이와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오, 사라야.  넌 모르고 말했다지만, 이건 언제 들어도 너무 홀리한 대사다.
 
아무튼 다시 치어스!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우리 테이블 앞에 있던 의자를 말도 없이 빼갔던 옆 자리 아저씨들이 '야! 이제 드디어 좀 자리 넓혀보자!'하며 과장된 몸짓으로 우리가 있던 테이블쪽으로 확 퍼져앉더라. 
뭐 별로 좁게 앉지도 않았던 듯 한데, 좀 우습군 하며 돌아서는데, 은근슬쩍 라지 값을 받으려했던 것으로 보이는 그 중동계 서버는 못마땅한 눈길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펍 문을 나서기는 했으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라.  원래가 펍이 남자들만 이용하는 공간처럼 여겨지다가, 요즘에는 가족단위로 저녁도 먹으러가는 패밀리 레스토랑같은 분위기가 되어간다고 하던데...대세는 그렇더라도 아직 여전히 보수적이고 심지어 인종차별적인 분위기가 일부 펍에 남아있는 듯.  시골일수록 더하다고 하는데, 여긴 그래도 옥스포드 아닌가?...

뭐 런던에서 사라가 겪었다는 일을 생각하면, 꼭 도시라고 해서 그런 게 없는 것도 아니지.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영국사회에 극우단체들이 기승을 부렸었는데, 그나마 최근에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나는 듯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사라는 기대한다더라.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지적받는 주요 타겟은 무슬림인데, 웃기는 것은 모든 무슬림이 테러분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0.1초만 생각해봐도 잘 알만한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쉽게 휩쓸린다는 점이다.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2. 절친 조이가 며칠 전 겪었던 이야기. 

남편과 식사를 하러 좀 괜찮은 레스토랑에 갔는데, 옆에 앉아있던 젊은 영국애들이 싸늘하게 쨰려보더랜다.  웬 동양인들이 옆에 앉어? 하는 눈길로.  너무나 기분이 안좋아서 나갈까도 했다가, 남편이 그냥 무시하고 먹자고 해서 걍 농담도 하며 식사를 했단다.  그러나 찝찝한 느낌만은 버릴 수 없었다는.  
대만 시티뱅크 부사장인 조이와 로펌의 파트너인 그의 남편이 당했던 이런 경험.  늘 차분하고 사려깊게 이야기하는 조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성경공부 모임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까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듣고있던 성경공부 그룹 리더인 영국인 로버트와 캐시는 당혹스러워 하면서 '우리들이 미안해'라고 하더라. 
그들이 미안할 이유는 없다.  어디나 뇌가 없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므로.  그러나 결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는 거. 

무시해버릴수도 있는 아주 사소한 경험만으로 우리 마음이 이럴진대, 영화로운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했던 그 분은 어떠했을까. 
어제의 성경공부는 그래서 예수님의 값없는 희생을 실제적으로 피부깊숙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주 친절하고 서스럼없이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을 대한다.  그러나, 간혹 무시해주고픈 백인들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거겠지?  억지로 하지는 말고, 내킬때 기도하자.  
그들이 더 이상 근거없고 무의미한 우월감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기를.   하나님앞에 우리 인간들이 모두가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들인지를 하루속히 깨닫게 되기를.

오늘도 기도, 기도다.